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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옐로카펫’ 아이들은 쏙, 운전자는 살살

관리자 2016.08.25 23:57 조회 : 758

기사제목 : ‘옐로카펫’ 아이들은 쏙, 운전자는 살살

기사출처 : 한겨례  2016.08.22ㅣ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횡단보도 근처 벽에서부터 길바닥까지 노란색 세모꼴로 단장한 옐로카펫이 보행자와 운전자의 눈길을 끌어 교통사고를 줄여 준다. 종로구 비봉길 하비에르국제학교 앞에 깔린 옐로카펫 위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손성호, 양나원, 임서형, 고지우(왼쪽부터) 어린이가 길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노란색 공간에 서면 특별한 사람이 된 느낌이에요.” 종로구 비봉길 23번지 하비에르국제학교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길 건널 채비를 하던 양나원(12) 양의 답에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전 같으면 되도록 빨리 횡단보도를 건넜을 아이들은 지난 5월 횡단보도 앞에 깔려 있는 노란색 원뿔 모양의 ‘옐로카펫’에 서서 오가는 차량을 살핀다.  

“학교 앞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서 있는 아이들이 잘 보이니 아무래도 더 조심해서 운전하게 됩니다.” 운전자 박정희(53) 씨가 말하는 옐로카펫의 효과다. 횡단보도 앞쪽에서 설렁탕 집을 하는 문봉진(48) 사장도 “평일에는 한적한 곳이라 자동차가 속도를 내기도 했는데, 요즘은 속도가 많이 줄어든 듯합니다”며 옐로카펫이 가져온 변화에 신기해했다.  

지난해 4월 성북구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외 2곳에 처음으로 설치된 옐로카펫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대기 공간의 시인성(잘 보이는 정도)을 높이는 길바닥 표시를 말한다. 노란색 알루미늄 재질의 스티커와 밤에 불을 밝히는 태양광 램프가 시설의 전부다. 순수제작비도 한 곳당 350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반응은 그 어느 교통안전시설보다 뜨겁다. 옐로카펫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 2개월여 만인 지난달까지, 전국 105곳에 옐로카펫이 깔렸다. 지난달까지 39곳에 카펫을 깐 서울시는 2018년까지 300곳으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손을 잡았다. 기업들도 설치에 드는 비용을 대는 일에 적극적이다. 동부화재는 서울시와 후원 협약까지 맺었다.  옐로카펫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홍콩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 DFA(Design For Asia)는 지난해 12월 옐로카펫에 2015년 대상을 줬다. 24개국 765개의 작품이 참여한 아시아 최고의 디자인을 선정하는 행사였다. 심사위원 대표는 “단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전 세계 위험한 곳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길 바란다”며 대상 수여 이유를 밝혔다.    

옐로카펫은 지난해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아동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시작됐다. 지역 사정은 지역 주민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국제아동인권센터 공모에 성북구 길음뉴타운 학부모들의 모임 ‘길음밴드’가 참가하면서 옐로카펫은 잉태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 안전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소를 찾았다. 2주 동안 마을의 안전을 조사한 결과 모두가 횡단보도 교통사고를 지목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어린이 사망 사고의 원인 44%가 교통사고이고, 발생 장소 81%가 횡단보도다. 아이들은 횡단보도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횡단보도로 뛰어드는 데, 운전자가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주원인이었다. 어린이는 안전한 영역에서 신호를 기다리게 하고, 운전자에게는 이런 아이들을 잘 보게 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스페인의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게 지금의 옐로카펫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게 하는 ‘넛지 효과’(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부드럽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하는 것)를 내기 위해 노란색 스티커로 주변과 분리된 공간을 만들었다. 옐로카펫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테두리만 그려놓은 옐로카펫에서도 신호를 기다렸다. 주변과 구별되는 노란색은 운전자들의 시인성을 끌어올렸다. 지난 2월 교통학회가 연 세미나에서 옐로카펫의 시인성이 중구 광희초등학교 앞에서는 34%에서 85%로, 봉래초등학교에서는 34%에서 95%로 올라갔다고 발표할 정도로 옐로카펫은 눈에 잘 띄었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95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제도를 도입한 뒤 어린이 안전을 위한 시설이 늘었고, 단속도 강화해왔다. 그 결과로 2013년까지 사고 발생 건수와 사상자 수는 감소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전국적으로 다시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만4437명(사망 82)으로 줄었던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 수가 2015년 1만5034명(사망 65명)으로 늘었다.  

2014년 2월 어린이 교통사고 줄이기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열심히 정책을 펼쳐온 서울시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 수가 2013년 1805명(사망 4명)에서 2015년 1865명(사망 6명)으로 늘었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단속과 제도·시설 개선의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옐로카펫 기획을 주도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 이제복(30) 팀장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모두의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민이 단순히 시설물 설치를 요구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주체적 참여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옐로카펫 설치에 참여한 시민은 ‘우리 마을에 또 필요한 안전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이 모이고 실천될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요?”   

국제아동인권센터는 옐로카펫 장소 선정부터 설치까지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까지 참여하기를 바란다. 서울시도 녹색어머니회와 함께 카펫 까는 일을 하며 시민을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11일 마포구 공덕초등학교 후문 카펫 설치 작업에는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이고 경찰과 시의회 의원까지 참여했다. 함께 작업하면서 안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대책을 모으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게 참여자들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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