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세계일보]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사회

관리자 2016.05.23 22:50 조회 : 4093

기사제목 : [밀착취재]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사회, 정부 여성안전대책 주내 발표… 또 ‘뒷북’

기사출처 : 세계일보, 2016.05.23ㅣ김선영,이창수기자 007@segye.com



재개발을 앞두고 늘어난 빈 집,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 턱없이 부족하거나 품질도 시원찮은 폐쇄회로(CC)TV….  2010년 ‘살인마’ 김길태는 이런 치안 사각지대를 범행 무대로 활용했다. 그가 무고한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끔찍한 짓을 저질러 놓고도 한동안 경찰 수사망을 여유있게 따돌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퉈 “치안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희생당한 사건에서 보듯 범죄예방 환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쳤다’는 비판이 높은 이유이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 일대 비상안전벨과

폐쇄회로(CC)TV 등에 칠해진 노란색 페인트.
이제원 기자

23일 국회와 경찰 등에 따르면 범죄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근거 법령은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인면 수심’의 강력 범죄가 발생해 여론이 들끓으면 뒤늦게 대책을 내놓느라 부산을 떠는 일이 반복됐다. ‘여성 혐오 범죄’ 논란까지 부른 이번에도 정부는 여성안전대책을 논의해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발표키로 했다. 서울시도 남녀 공용화장실을 전수조사하고 성별에 따라 분리 설치하도록 ‘권고’하겠다는 계획을 부랴부랴 내놨다. 권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2006년 11월 개정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 전에 지어졌거나 일정 규모 이하의 건물(연면적 2000㎡ 미만 상가, 3000㎡ 미만 업무시설)은 남녀 화장실 분리를 강제할 수 없는 탓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셉테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셉테드는 우범지역에 밝은 분위기의 벽화를 그리거나 CCTV·비상벨·조명 등을 적절한 곳에 배치해 범죄 심리를 위축, 차단하는 기법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일부 지자체장이나 경찰 지휘관의 관심 정도, 의지에 따라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셉테드는 지역별 인구생태학적 환경과 범죄통계 등의 면밀한 분석에 기반해 경찰과 지자체가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지금은 종합계획이나 사업예산 없이 중구난방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가 지난해 22억원을 들인 셉테드 사업은 관리 부실로 용두사미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범죄예방기본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잠만 자다 19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처분될 처지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범죄예방의 개념을 정의하고 경찰청장이 5년마다 협업적 범죄예방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게 하는 한편 셉테드 활성화를 총괄할 범죄예방공단 신설 등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통과되면 지역사회와 경찰이 협업해 포괄적인 범죄 예방체계를 구축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일본은 2002년 이와 유사한 개념의 ‘생활안전조례’ 제정 이후 2004년부터 10년간 범죄 발생이 49%가량 감소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치안 패러다임을 사후 처리가 아닌 발생 억제와 예방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20대 국회에서는 예방적 경찰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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